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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터 케이브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 - 철학이 내게 건낸 말들
    세상이 내게. 내가 세상에게/책과 나누는 이야기 2014. 5. 2. 10:02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늘 숨을 쉬지만 매번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인지는 하지만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 제목이어서 그럴까.


    책 내용은 재미있는 부분도 있으면서 난해했다. 다소 가볍게 읽기에는 다소 버거웠다. 여러 주제에 관해서 계속 논리를 따라가려 하다보니 내 머리가 쉽게 지쳤다. 결국 중반부 까지 읽은 후 통독을 하며 글귀를 뽑았다. 이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1. 철학은 언어라는 무기를 들고 지성의 마법에 맞서는 싸움이다. 

    경영학을 배우면서 "경영학은 얼마나 고뇌하고 깊이 생각하느냐의 싸움이다"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면 다소 차이를 보인다. 안다(Know)와 이해하다(Understand)의 차이일까.

    생각도 글로 혹은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으로 '언어'라고 표현한다면, 저 글귀는 경영학과 유사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주변 환경에 대한 관찰력과 이해력, 기타 여러 가지에 대해 살핀 후, 그로부터 파악한 '언어'라는 무기로 세상에 맞서는 것. 그러려고 적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적어놓으니 왠지 멋있어 보인다. 


    2. "당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충동을 느끼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라."

    이 표현은 직관력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직관을 따르는 것은 참 어렵다. 무엇보다도 떠오르는 생각이 직관인지 아니면 자기합리화인 것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이 또한 무수한 노력을 하며 시행착오를 겪으면 보다 나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직관과 관련된 한 책에서도 지속적으로 자기를 들여다보며 연습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3. 먼 미래와 불확실한 이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든 혹은 나중 세대를 위해서든 불합리할 수 있다. ...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미래의 더 나은 상황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보다 더 합리적일 때가 많다. 더 나아가 종종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혹은 다른 무언가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너무 완벽하려고 하면 때를 놓친다.'

    얼마나 해야하는지는 모르지만, 너무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하지는 말라고 한다. 동일한 시간에 최대한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너무 추상적이다. 도대체 그 정도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적절한 양, 적절한 시기. 모두다 어렵다. 그래서 '운칠기삼'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것들 모두 완벽하게 할 수 없다. 주변 상황에 따라서 적절하게 본인의 노력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앞서 직관력에 대해 말한 것처럼 이 또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워나가는 부분일 것이다.


    4. 보통 사랑은 연인들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의 관계를 가치 있다고 여기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때 활짝 꽃을 피우게 된다. 

    이와 유사한 내용을 경영학원론 시간에 들었다. 상대에게 효용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사랑과 이익 혹은 사랑과 효용을 연관지어서 불쾌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에게 잘 해주고 싶어한다는 행동이나 말이 상대방에게 가치를 준다고 생각한다면, 그 거부감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5. 우리는 정말로 해야 옳다고 믿는 일을 관철해나가는 데 자주 실패한다. 대신에 당장 자기에게 이익이라고 느끼는 것에 굴복한다.



    6. 주입은 방어기제를 투입한다. 그것은 주입을 당한 사람이 주입된 내용에 대한 반대 증거를 접했을 때 무턱대고 거부하게 만드는 약물이다.

    대학에 들어서면서 부터 주입식으로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 호기심을 가지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가며 공부를 했다.

    이 글귀를 보니, 그동안 취해온 공부 방식 덕분에 반대 증거를 접했을 때 거부 반응이 적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괜한 자존심으로 인하여 거부한 적은 있지만.. 그래도 괜한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반대 증거를 접했을 때 거부가 아닌 수용을 먼저 해보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주변 사람들이 꾸준히 말해준 덕분이다.)


    7. 내가 타인의 생각과 느낌(완전히 동일한 생각과 느낌들)을 경험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불가능함 때문에 괴롭다. 무언가 소중한 것,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과 같은 가능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누리고 있는 만큼 타인의 생각과 느낌에 대해서 특권적 위치를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당황하고 괴로움을 겪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너무 알고 싶다. 그런데 이것을 제일 잘 아는 방법은 상호간에 생각이나 느낌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상대방의 말 역시 본인의 언어로, 본인의 생각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그 차이를 줄여줄 것이다.


    8. 슬픈 음악이 그 자체로 슬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고 해도 여전히 음악을 들으면서 슬픈 친구를 보고 있는 듯한 감정적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한다. 이런 사람들이 공감력이 좋을거라 생각한다. 본인이 상대방과 다른 처지에 있지만 상대방을 보고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앞서 적은 글귀와 '~듯한 감정적 반응을 한다'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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