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조셉 오코너와 이안 맥더모트의 'NLP의 원리' - 깊이가 느껴지는
    세상이 내게. 내가 세상에게/책과 나누는 이야기 2014. 1. 20. 13:56

    NLP 와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낯설기보다는 친숙하다. 그렇다고 가족 같지는 않다. 명절이면 만나는 친척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딱 그정도다. 


    책의 마지막 장이 넘어갔다. 대부분 처음 접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색한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뒤끝이 남아있다. 뭔가 찜찜하다. 도대체 이 기분은 무엇일까.


    그러한 기분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이 책이 좋다는 말을 꺼내고 싶다. 쉽게 쓰려고 노력한 것이 보이면서도, 그 속에서 깊은 메아리가 울려퍼지기 때문이다. 적다보니 다 읽고 난 후 느껴졌던 그 느낌은, 이 책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이 책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딱!! 이 정도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많~은 경험을 할 것이다. 삶과 부딪치고 난 후에 다시 접한다면, 그때는 또다른 배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NLP 를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잠시 옆으로 비껴두고 다른 책을 꺼내 들기를 바란다. 이 책으로 시작을 하려고 한다는 것은,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50m 달리기를 하려고 하는 것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쉬운 책으로 스트레칭도 하고 걷는 연습을 제대로 한 다음에, 기초 체력을 위해 이 책을 읽는 것이 보다 현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해서 한마디를 하자면,

    "깊이가 느껴지는"

    이 말이 이 책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말이라 생각한다.


    <글귀>

    NLP는 사람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고 깊은 매력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주관적 경험의 구조를 다룬다.


    NLP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뛰어난 탁월성을 발휘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돕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날 래포의 의미는 꼭 상담관계에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으로 꼽힌다. 그러나 오늘날 래포의 의미는 꼭 상담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적용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며 무엇을 원하든 상관없이,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으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성공의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라고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우리는 특정한 방향으로만 행동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하게 됨을 알면서도, 다른 대안 행동을 찾아보지 못하고 자기 구덩이를 스스로 파들어 가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개발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믿는 기능이 있는가?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믿는 한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어느 한 차원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통 다른 차원으로 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옷차림과 외모 또한 신체 언어의 일부이다. 그런 요인들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외부 세계에 자신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옷차림과 외모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첫인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열쇠 중의 하나는 다른 살마들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를 인정함으로써 가능해지는데, 보통 이때 상대방은 이러한 인정을 정체성 차원에서 받아들이게 된다.


    신체적 일치는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것은 신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감정상태와 사고방식이 영향을 받고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 일치는 흉내내기가 아니라 두 개의 악기가 화음을 이루는 것과 같다. 이것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실험 방법은 상대방의 목소리 크기와 속도에 자신을 일치시켜 보는 것이다.


    이끌기(leading)를 하는 경우에, 먼저 함께 보조를 맞추고 래포를 형성하지 않고는 상대를 이끌 수가 없다.


    다중관점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반응의 유연성에 속한다.


    의사소통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상대방으로부터 얻는 반응에 의해 결정된다.


    만약 당신이 ‘당신과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를 알려면 당신 자신이 보이는 반응을 보아야 한다’ 는 점을 전제로 하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아마도 당신 자신의 신체가 보이는 반응 즉 느낌과 직관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뜻일 것이다.


    인간관계란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반응에서 변화를 원한다면 자신의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그렇게 자신의 행동을 바꾸게 되면 상대방은 당신을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또한 변할 것이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묘사되는 성과를 설정한다는 것은 사지 않으려는 물건의 목록을 들고 쇼핑을 가는 것과 다름없다.


    자신의 내부에서 많은 것을 발견할수록 외부의 것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이미 자신 속에 힘을 지니고 있다. … 하루를 마칠 때 그날 당신이 잘한 일이 무엇인지를 기억해 보라. 그리고 그것을 잘 상기하여 후에 당신이 다시 필요로 할 때 쉽게 되돌아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당신의 자원목록에 입력하고 정리해 보자. 그러한 기억들은 언젠가는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 사람은 하나로 뭉뚱그려진 인격을 지닌 것이 아니다. 여러 다른 부분들에 대한 통일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부분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고 한 오케스트라에 속해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행동 그 자체가 아니다. 팀의 한 구성원 또는 오케스트라의 어느 한 악기가 아니다. 오히려 여러 구성원들로 이루어지는 팀이요, 여러 악기로 구성되는 오케스트라이다. 팀이 함께 모일 때, 선율이 화합할 때가 바로 일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학습과 변화는 언제나 무의식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나중에 그 변화를 깨닫고 그것을 우리의 삶 속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사람의 행동은 언제나 자신을 위해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정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단지 그 행동의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다.


    우선적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무의식은 의식과 균형을 이룬다. 따라서 우리는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함으로써 그 행동 속에는 의식이 무시하고 있는 중요한 의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자신의 신체에 민감해지면 당신 스스로에게 보조를 맞추며 자신을 목표하는 방향으로 쉽게 이끌어 갈 수가 있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더 이완되고 직관적인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직관은 별 의식 없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하나의 통찰이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자신의 방식이다.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자신의 상태에 달려 있다.


    사람에게는 다른 상태보다 더 자주 방문하는, 그리고 정기적으로 돌아가곤 하는 몇 가지 ‘상태’ 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기지선 상태, 즉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익숙한 상태이다.


    우리는 보통 자신도 모르게 말, 억양, 신체 언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유발시킨다. 그런데도 우리는 상대방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기가 쉽다.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인식하는 기술을 NLP 용어로는 계측(Calibration)이라고 한다.


    몸짓의 의미에 대한 일반론에 고착되기보다는 현재 그 사람의 몸짓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러한 그의 속마음이 어떠한지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훨씬 가치롭다.


    계측은 독심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서 보고 듣는 신호들을 상대의 내적인 ‘상태’ 와 관련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풍기는 시각적 청각적 자극들, 즉 신호를 통하여 그의 내적인 상태가 어떠하다고 이해하는 것으로서, 결국 그러한 외적인 신호들을 내적인 상태와 관련지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감각은 생각보다 비범하고 예리해서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관찰하면 평상시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일단 당신이 그 닻(Anchor)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면 그것에 반응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할 수 있다. 정신수련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떤 자극에 대해서 기계적으로 반응을 하기 전에 먼저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반응을 선택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당신도 그렇게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반응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상태라는 것은 전염성이 있으므로 당신 스스로가 자원이 풍부한 상태에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닻(Anchor)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과 함께 있기를 원한다. 그들 스스로도 어떻게 해서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칭찬했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즐거움을 준 것이다.


    당신이 느끼고 싶거나 경험하며 갖기를 원하는 자원을 선택하여 그것을 닻(Anchor)으로 연결한다면 그 닻을 사용함으로써 자원을 현재의 순간으로 가져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상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은 서로에게 어떤 표상체계가 중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애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


    표상체계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서로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환경을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꾸며나갈 수가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환경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된다.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는지에 주의해 보자.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다양한 감각세계 전체가 눈앞에 열리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그들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꼈던 것은 각자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통역자’ 가 필요했던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의 시간선을 보려면 그의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미래에 희망하는 일을 비교해 보도록 하라. 그들이 각각의 사건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들어 보고, 특히 그들의 시선과 몸짓을 지켜 보라. 비록 그가 의식적으로 인식하지는 않지만, 그의 몸은 과거와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줄 것이다.


    연합과 분리는 두 개의 매우 중요한 하위양식이다. 우리가 내면적으로 어떤 경험 안에 있으면서 그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을 때를 연합(association) 상태에 있다고 한다. 반면에 밖에서 거리를 두고 자신을 보고 있을 때는 그 경험과 분리(dissociation)된 상태이다. 연합 상태는 경험을 주관화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분리 상태는 경험을 객관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NLP는 우리의 면역체계가 내적 대화를 엿듣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모방하기는 어린아이가 사물을 배우는 방식과 같다. 그것은 또한 걷기와 말하기를 배웠던 방식과도 같다. … 아이들은 단지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능력에 기초하여 주위의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면서 배울 뿐이다.


    어떤 기술을 모방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신경적 차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모델 즉 모방의 대상은 무엇을 하는가(행동과 생리적 기능),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사고하는 방식), 그리고 왜 하는가(신념과 가치관)이다. 또한 모델의 환경과 정체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일단 당신이 모방하기 기술을 익힌다면 그 기술을 이용해서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어떤 대사이라도 모델로 삼고 모방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 좋은 그림을 그리고 좋은 느낌을 느끼든지 혹은 나쁜 그림을 그리고 나쁜 느낌을 느끼든지, 그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선택의 결과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창조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선택과 창조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사람들에게 ‘사랑’ 또는 ‘명예’ 가 무슨 의미인지 질문하면 많은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고찰해 보면 그가 어떻게 세상 경험을 삭제하고 왜곡하고 일반화시키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화자가 말한 실제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청자는 자기의 수준에서 적당히 삭제를 하면서 그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적절한 질문을 함으로써 상대가 실제 경험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좀더 분명하게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


    사람이 의욕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아닌 자신에게 손짓하고 있는 미래와 비교를 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발전되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출발한 장소와 비교해야 한다.


    이와 같이 간단히 한 단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매우 강력한 변화를 줄 수 있다.


    왜곡은 하나의 행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정지된 실체로 취급할 때 일어난다. … 왜곡이란 이러한 명사들(사랑, 정의, 교육, 신념, 선택, 협동, 공포, 기억 등)이 실제로는 동사인데도 명사로 가장한다는 것이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