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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에 대해서 생각을 하며 얻은 것들세상이 내게. 내가 세상에게 2013. 10. 4. 09:53
군대에 갔다오고 나서부터는 일주일에 한번정도 부모님께 전화를 드린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주말부부이기 때문에 두분 모두에게 전화를 한다. 전에는 알지 못했었는데 이제서야 부모님과 꾸준히 연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인지했다고나 할까.
이렇게 전화를 드리면 어머니와는 주로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반면에 아버지께서는 내게 많은 것을 전해주시려고 한다. 전에는 잔소리로 들리던 것이 아버지의 의중을 생각해보려고 하다보니 삶의 연륜이 담겨있는 깊이있는 말이란 것을 미연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개천절에 계획한 일을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하면서 여유가 생겼고 아버지께서 해주셨던 말 중에 하나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부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능력만으로는 올라가는데 한계가 있다."
1. 아부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아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했다. 아부는 '아부의 왕'이라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인지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아버지께서 아부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신 것일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버지께서 예를 들어주실 때에도 고객 응대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해주셨다. 상대방을 치켜올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도 하셨다. 하지만 반대로 무게감을 보여야할 때는 확실하게 보여야 한다고도 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아부는 마냥 남을 띄워주는 것과 다르고, 좋게 좋게 하자는 생각과는 다른 것 같다.
아부란 것은 많이들 알고 있지만 그리 단순한 개념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다시 돌이켜보며 생각하다보니 나는 이렇게 정의를 내리는 것 같았다.
"아부란 두세단계 다음을 보는 서비스이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기꺼이 하는 아부와 어쩔 수 없이 하는 이유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보다 멀리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 멀리 본다는 것.
나는 바둑을 배운 적이 없지만 어디에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바둑은 다음 수 그리고 그 다음 수를 헤아리는 게임이다. 얼마나 수를 잘 세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린다.' 이 말이 아부를 하는데 있어서 멀리본다는 것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부를 하는데 있어서 멀리본다는 것은, 다시말해서 진심을 담는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치켜세워줌으로써 내게 뭘 해달라고 하는 마음을 담으라는 것이 아니다. 바둑에서 수를 많이 세는 것처럼 지금 내가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해줌으로써 그 여파가 내게 가져오는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지금 당장 나의 행동이나 말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한수 한수를 두다보면, 전에 문득 두었던 한 수가 독이 되기도 할 수 있고 나를 살리는 한수가 될 수도 있다."
3. 나를 살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살린다는 것은 무엇일까. 위로 올라갈수록 그 폭이 좁아지는 사회에서 내가 산다는 것은 남을 이긴다는 것일까. 여기서는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렌버핏이 한 말이 떠오른다. '나의 첫번째 원칙은 잃지 않는 것이다. 두번째 원칙은 첫번째 원칙을 지키는 것이고, 세번째 원칙은 두번째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것도 이처럼 누군가를 이길 줄 아는 것보다는 남에게 지지 않을 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길 줄 안다는 것은 나보다 나은 누군가를 이길 줄 안다는 것이다. 내 위에 있는 사람을 이길 줄 안다면 내가 최고가 되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누군가 나보다 나아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러한 한계가 없는 것 같다. 지지 않는다는 것은 나보다 나은 것에 지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나보다 못한 것에도 지지 않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지금 둔 남을 위한 한 수가 언젠가 내가 미끄러졌을 때 나를 살려주는 한 수가 되는 것은 아닐까."
4. 그렇다면 결국 나를 위한 것인가.
결국 아부는 미래의 나를 위한 하나의 이기적인 행동인 것처럼 보인다. 결국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인 것일까. 하지만 마냥 이기적으로 보면 안될 것 같다.
처음에 말했듯이 행동이나 말에는 그 사람의 진심이 담길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위해서 남에게 잘해준다는 것은,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잘해주는 것과 다소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이기적인 것을 '반드시'이라는 단어로 나누어 보았다.
'내가 이렇게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함으로써 그 대가가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내가 이렇게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함으로써 그 대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수도 있다.'
반드시라는 말을 썼을 때는 잃을 것이 있지만, 쓰지 않았을 때는 잃을 것은 없고 얻을 것만 있다.
5. 생각을 마무리하며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사람들이 아부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아부가 아니라, 잃지 않기 위해서 상대방을 향해 배려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전혀 다른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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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적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하지만 일깨워주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 누군가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은 것을 하는 것은, 창의적이고 생각의 사고가 열려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을 한다면 그것은 비범한 것이 아닐까.
- 생각을 하고 못하고의 차이보다는 이해를 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큰 것이 아닐까.
- 나이에 따라서 깊이가 다른 것이 아니다. 얼마나 생각했느냐에 따라서 깊이가 다르다.
- 돈을 잘 벌면 사업가이지만, 생각의 깊이가 있고 철학이 있다면 경영자인 것은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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